우쭐대지마, 너도 결국 사람이다

[54호]

[그림이야기] 해골그림에 담긴 교훈들
박은정 | blog.naver.com/winwinter 이 기사를 프린트하기 이 기사를 트위터로 보내기
2011.11.07 14:20:23


로마제국 전성기 시절, 전쟁에 승리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벌일 때면 장군의 뒤에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연신 외치는 노예의 소리가 들렸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승전을 축하하는 행진에서 감히 노예 따위가 개선장군에게 저주와도 같은 소리를 퍼붓다니 좀 요상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메멘토 모리’는 승전의 기쁨에 취한 장군이 기쁨에 들떠 자칫 우쭐대거나 오만방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풍습이었다. 장군에게 승전이란 전쟁터에서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의 대가라는 것을 일깨우기도 하고, 승전에 대한 자만으로 쿠데타라도 일으킬지 모를 장군을 견제하는 일종의 의식이던 셈이다. ‘메멘토 모리’라는 경고는 가톨릭과 결합하여 종교적 교훈이 되어 유럽세계에 번졌다. 당연히 이를 반영한 그림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젊은 권력자를 위한 축복과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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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the younger (1497년 ~ 1543년) <대사들 ambassadors> 1533


스물아홉, 스물다섯 나이에 대사가 되고 주교가 되다니 대단하다. 아무리 16세기라지만 자라면서 영재 소리 꽤나 들었을 것이고 주위에선 칭찬하는 소리가 자자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영국 주재 프랑스 대사인 장 드 댕트빌과 그의 친구인 라보르의 주교 조르주 드 샐브다. 화가 한스 홀바인은 이들 젊은 대사와 주교를 위해 그림을 그렸고 그림 안에 축복과 권고를 같이 담았다. 두 사람이 기댄 탁자엔 지식과 문화적 소양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쌓여 있다. 당시로선 첨단과학의 상징이었을 천구의와 해시계도 보인다.
섬세하게 그린 의상과 장신구는 그들이 누렸을 부귀와 영예를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홀바인은 두 청년을 빛나게 하는 상징 속에 권력의 길에 들어선 두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숨겨 두었다. 왼쪽 위 커튼 바깥으로 겨우 보이는 십자가상과 그림 아래쪽 가운데에 있는 해골 그림이 그것이다. 해골이라니? 무슨 돌조각 같은 것만 보이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림의 오른쪽에서 그림면을 눈과 직각으로 놓고 보면 다음 그림과 같은 해골 모양이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홀바인은 현실의 영예로움에만 초점을 두면 놓치기 쉽지만 다른 각도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을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겸손할 것을 그림에 담아 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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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대사들>을 오른쪽 측면에서 보면 나타나는 해골 그림.

전쟁을 거치고서야 배운 겸허, 바니타스

17세기에 바니타스 정물이 유행했다.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헛됨’, ‘덧없음’을 뜻한다. 인간의 명예나 지식, 부귀와 즐거움도 영원하지 않다는 경고가 탁자 위에 놓인 정물에 그득하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탁자 가운데에 있다. 그 주변엔 사람의 유한한 생명을 상징하는 시계와 불꺼진 램프, 허영의 상징인 동양의 화려한 비단과 소라껍질과 일본도, 즐거움도 유희도 한 때라는 것은 보여주는 연주를 멎은 악기와 인간의 제한된 지식을 담은 몇 권의 책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다. 제각각 ‘바니타스’를 상징한다. 종교전쟁을 30년 넘게 치르고 나서야 유럽인들은 종교의 잣대를 자기 방식으로 고집하고 무력으로 굴복시키려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는다. 전쟁은 너무 많은 죽음과 파괴를 몰고 왔다. 폐허 속에서 비로소 겸손해진 유럽인들은 다른 종교와 다른 종교 규범을 인정한다. 해골이 포함된 ‘바니타스’ 정물의 유행은 값비싼 생명을 희생하고 얻은 겸허를 기억하려는 노력의 상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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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하르멘 스텐비크 Harmen Steenwijck <바니타스의 알레고리 Vanitasstilleben> 1640 /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덧없음을 뜻한다.


죽음이 평등하다면 삶도 평등해야지!

멕시코 혁명 후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미술운동인 ‘아르떼 뽀뿔라르’가 펼쳐졌다. 라틴문화의 원형을 연구하고, 라틴의 형태와 색채, 표현형식을 만드는 운동이었다. 그 성과는 디에고 리베라나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등 화가의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남는다. 아르떼 뽀뿔라르에 짙은 영향을 준 작가가 있다. 과달루페 포사다다. 포사다는 미술을 공부한 이력이 있긴 했지만 화가라기보다 편집인쇄 노동자에 속했다. 그는 라틴원주민 문화에 등장하는 해골 등의 소재를 빌어 직설적인 풍자와 해학이 담긴 판화 그림을 왕성하게 제작해서 폭넓은 공감을 얻는다. 가난한 인쇄 노동자가 미술이 갖는 대중적인 설득력을 앞서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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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 Jose guadalupe posada <해골 카트리나 Calavera Catrina> 1913

포사다의 판화 그림엔 ‘해골’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 해골 그림엔 중세 유럽의 해골과는 달리 표정도 있고, 움직임도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죽음과 인간이면 누구나 누리는 삶이 하나의 이미지로 합쳐져서 ‘본원적인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쓰던 화려한 깃털장식의 모자를 쓴 <해골 카트리나>는 사치를 일삼는 상류층을 풍자한 그림이다. 멋지고 화려한 모자와 상반된 우스꽝스런 표정의 해골엔 겉을 화려하게 꾸며도 본성을 감출 수 없을 거란 포사다의 비아냥이 담겼다. 한편 포사다는 <자전거 타는 해골>에 다양한 계층과 신분의 사람들이 어울어진 풍경을 담았다. 죽음을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처럼 삶에도 평등이 깃들기를 바라는 포사다의 생각이 담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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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은 아즈텍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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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호세 과달루페 포사다 Jose guadalupe posada<자전거 타는 해골들 Calavera “Las Bicicletas”>1889?95 


우쭐대지 마라.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삶도 평등하게 만들어라. 수백 년에 걸친 화가들의 권고를 가만히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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