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미국 거대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포에버21이 코트라의 투자유치사업설명회에 참석했다. 월마트는 지난 2006년 한국에서 철수했으나 최근 한미FTA 논의가 본격화되자 한국 사무소를 연 바 있다. 미국 3대 식료품 유통업체인 슈퍼밸류(Supervalu) 사도 한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 유통업계는 미중 환율갈등 등으로 중국을 대체할 신규 시장을 찾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카길은 충남 당진에 대두 가공공장을 건립하는 MOU를 충남도와 체결했다. 이를 통해 카길은 자사유통망을 통해 수입한 콩을 식용유로 가공해 한국에 팔 수 있게 되었다. 생산량 기준으로 보면 국내 대두유 업계 1위가 된다. 자사 콩을 들여오면서 가격경쟁력 역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국내 식품업계 관계자는 “대두유는 올리브유 등 고급 식용유와 달리 가격에 매출이 좌우되는 품목이라 카길이 본격 생산에 나서면 시장을 그대로 빼앗길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기름을 짜낸 부산물을 활용해 국내 사기업 사료시장 점유율(10%, 국내 1위)을 두 배로 늘려, 국내 기업들과의 격차를 더울 벌릴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비준이 논의되면서 초국적 자본이 한국 시장에 바짝 가까워졌다. 과연 한미 FTA 체결 후 월마트와 카길이 한국의 동네 수퍼와 상생할 수 있을까. 중소상공인들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대형자본을 규제하고 중소상공인을 지원할 토대가 너무 취약해져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허점 투성이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이 대표적인 근거다.
지난 6월 한EU FTA 체결 당시 정부는 유통,상생법을 “실효성 있게 운영하겠다”고 공언하고 일부 개정도 했으나 신규 SSM은 작년 한 해만 200여 개나 늘어났다. 대형마트가 직간접적으로 도시재생사업에 개입해 전통상업보전구역이나 민자역사 등에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전통상업보전구역 내에 매입, 분양 등을 통해 부지를 확보했거나 공사에 들어간 대형마트는 모두 30곳에 달한다. 지난달 1년여의 갈등 끝에 삼양시장에 입점한 롯데마트 삼양점도 그러한 예다.
(주)삼양시장은 지난해 재래시장특별법에 따라 삼양시장재정비사업을 허가받고 건물을 재건축했다. 이로 인해 10년 전부터 월세를 내며 영업해온 50여 개 영세 점포들은 자리를 떠야 했다. 그런데 (주)삼양시장이 롯데마트와 입점계약을 맺었다. 상인들은 롯데마트가 처음부터 출점을 목적으로 하고 건물주를 앞세워 사업 승인을 받은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새 건물은 시장이 아닌 대규모 점포로 등록됐다. 삼양시장 상인은 재래시장 특별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게 되었다. 점포 인근 700m에 수유시장이, 반경 3km 안에 대형마트가 2곳이나 있는 지역임에도 유통법 개정안(한갋U FTA의 피해를 방어한다며 올해 6월 전통상업보존구역 500m를 1km로 확대)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제정하지 않아서였다.
인천시는 옛 숭의운동장을 재건축해 만들고 있는 축구전용구장에 홈플러스 조건부 입점허가를 내 논란을 일으켰다. 반경 150m 내에 전통시장이 하나, 4km 안에 전통시장 18곳과 대형마트 4개가 밀집한 이 지역에 무리하게 허가를 낸 이유는 사업비용이다. 홈플러스는 시행사인 (주)에이파크개발에 선납임대료 330억 원을 약속했다. 시행사가 사업을 포기할 경우 인천시는 공사비와 손해배상의 부담을 지게 된다.
대형마트의 공격은 유통망으로까지 뻗어가고 있다. 이마트는 최근 창고형 마트인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온라인 마트인 이클럽을 런칭했다. 일반 소매업뿐 아니라 중소 자영업자를 상대로 하는 도매업까지 진출한 것이다. ‘청정원’ 브랜드로 알려진 대기업인 (주)대상도 최근 인천 삼산동에 도소매 매장을 만들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인천 송림점 오픈 후 인천도소매업협동조합의 매출은 30%이상 떨어졌다. “제조업체들마저 압박을 받고 낮은 마진을 감수하며 이마트에 납품을 하고 있다”고 조합측은 전한다.
반면 제도는 무력하기만 하다. 부산, 인천지역 유통상인연합회가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상대로 사업조정신청을 제기한 상태지만 중소기업청은 5개월이 지나도록 신청 대상이 맞는지조차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OECD평균의 2배에 달하는 31.3%다. 이러한 과포화 시장에 대한 대기업의 무분별한 침투는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상위 20%의 개인사업자가 총소득의 2/3을 가져간 반면, 대부분이 영세 자영업자들인 하위 60%는 총소득의 10%밖에 가져가지 못했다.
양극화에 기름 붓는 한미 FTA
여기에 한미 FTA로 인해 ‘고삐 풀린’ 외국 대기업들이 진출한다면, 중소상공인들은 더욱 벼랑 끝에 몰릴 것이라고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기획실장은 주장했다. “1996년 WTO가입 등으로 도소매 유통업을 개방하면서 5천여 개였던 재래시장은 70%이상 사라진 1400여 개만 남았다. 2007년 604만 명이었던 자영업 종사자는 3년이 지난 2010년 550만 개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미 FTA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빤하지 않나. 최근 월마트는 한국처럼 ‘월마트 익스프레스’라는 SSM을 통해 미국 내 골목상권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엔 소비패턴, 경영방식의 차이로 한국 시장에서 실패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카길 역시 ‘청정원’처럼 식료품으로 시작해 고추장, 된장까지 팔고 식자재 유통업에 진출해 국내 유통망을 장악할 수 있다. 자본에게는 생산과 유통을 대형화하는 게 엄청나게 효율적이다. 월마트와 카길이 손을 잡고 도소매 매장을 열 가능성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느냐.”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기획실장
마찬가지로 한미 FTA의 이익은 국내시장 방어에 미국시장 진출 전략까지 준비 중인 대기업 등에 집중되는 반면, 각종 부작용은 농ㆍ어민과 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에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창우 FTA연구원장은 “칠레나 아세안(ASEAN)과의 FTA는 개방도가 낮아 실감하지 못했으나 무역장벽을 대폭 낮춘 유럽연합(EU), 미국과의 FTA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 서민계층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10년에 대한 영향평가와 우리나라의 FTA 정책에의 시사점’ 보고서도 “멕시코는 다른 NAFTA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생산성 증가에 따른 이득이 노동자의 소득으로 이전되지 못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폐해를 막고 중소상공인을 보호, 육성하기 위한 대안도 없지는 않다. 유통법.상생법 강화, 무역조정지원제도 확대 적용, 적합업종특별법 제정, 정부의 ‘수퍼업종 지원’과 같은 소상공인 특별지원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의 독소조항을 거치면 이러한 모든 법과 논의는 무력해진다. 투자자는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제도(ISD)’에 따라 유통법의 ‘전통시장 보호’도, 대기업이 끼어들지 못하는 ‘적합업종’ 선정도, 정부의 소상공인 특별지원도 ‘차별조치, 영업방해’로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108개 조항을 제외한 모든 도소매업(앞으로 생길 업종까지 포함)을 개방하기로 한 협정문에 근거해서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매장.
ISD는 국가 정책까지 자본의 구미대로 휘둘렀다. 2002년 폴란드는 EU 기준에 맞춰 이소글루코오스(설탕 대용품) 연간 생산량 쿼터제를 도입했다. “카길 폴란드 공장의 연간 생산가능량에 비하면 쿼터가 적다”는 카길의 항의로 폴란드는 국내 설탕생산 쿼터를 줄이면서까지 카길사의 쿼터를 늘렸지만 카길은 보상금 1억 3천만 달러를 요구하며 폴란드를 국제 중재에 회부했다. 이는 1994년 체결한 미-폴란드 간 투자협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2008년 유엔국제법위원회는 카길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처럼 외국자본이 지자체의 권한까지 흔드는 조짐이 벌써 국내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미국계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홀세일과 울산의 갈등이 그것이다. 2004년 진장유통단지사업조합은 울산 북구 진장동 유통단지 내 약 9260평의 부지를 할인매장 용지로 매입했다. 그 후 2010년 8월 코스트코와 계약을 체결하고 북구에 매장 건축심의를 신청했다.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은 중소상인 보호를 이유로 이를 반려했다. 이에 유통조합 측은 울산시 측에 반려취소 소송을 걸었고, 승소한 후 북구청과 윤 북구청장을 상대로 1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와 ‘직권남용’ 형사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지난 10월 24일 한미 FTA 끝장토론에서 ISD 악용 우려에 대해 “국내 정서를 알고, 소송부담금 문제도 있어 찔러나 보자는 식의 소송은 없을 것”이라고 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말과는 사뭇 다른 현실이다.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 있어서는 국내 산업에 어떤 피해가 있더라도 한 번 확정한 협정문을 고칠 수 없다. ‘역진방지’(Ratchet) 조항 때문이다. 이미 확정한 개방에 있어 그보다 수준을 낮추는 쪽으로의 수정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넘어 과연 한미 FTA가 중소상공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단 “그런 적이 있다”는 사례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대책도 제시된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