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이번호부터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담는 ‘오래된 미래’ 연재를 시작한다. ‘오래된 미래’는 언어학자인 헬레나 호지가 언어 연구를 위해 인도 북부 작은 마을 라다크에 갔다가 라다크가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생태적 지혜로 천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오다가 서구식 개발 속에 파괴돼 가는 과정을 그린 책,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로부터 차용했다. ‘오래된 미래’는 ‘개발’이란 포장된 이데올로기 안에 있지 않음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기획을 통해 농촌과 도시,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도 가까워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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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칸께서 말씀하시길 자고로 백성은 먹는 것으로 다스리라고 하셨다”
“우리 아버님께서는 말씀하시길 사람이 먹지 않으면 시야가 흐려지니 싸우기 전에는 든든히 먹어야한다고 하셨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청의 왕자와 자인 사이에 오간 대화랍니다. 좀 더 소개해 드리면, 여주인공 자인의 혼례 당일 병자호란이 터집니다. 신부인 자인은 포로로 끌려가게 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청나라 왕자의 눈에 띄어 수청을 들어야 하는데 격렬하게 반항합니다. 그 대가로 하루 종일 굶는 것은 물론 절대 앉지도 못하고 서있어야 하는 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었을 때 자인은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어먹지요. 이 모습을 본 왕자는 “무엇이 너를 이토록 무너지게 했느냐? 두려움이냐? 절망이냐? 아니면 굶주림이냐?”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그리고선 자인이 항복할거라 생각하고 승자의 느물거리는 웃음과 함께 위와 같은 말을 하는 거죠. 과연 자인이 무너진 걸까요? 천만의 말씀. 용감하고 당찬 자인은 투항은커녕 든든히 먹고, 고기 꼬챙이로 청의 왕자를 공격합니다.
위 대사는 먹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압축하고 있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움직일 수 있는 힘! 에너지를 주지요. 그 에너지는 바로 생명력입니다. 또 먹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형형색색과 독특한 향, 혀에 닿는 다채로운 맛까지 오감을 살려내기도 합니다. 아무리 21세기 첨단과학시대라도 알약으로 먹거리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또한 ‘함께 먹는다’는 것은 관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만날 때, 친해지고 싶을 때 제일 먼저 “같이 밥 한번 먹자”고 말합니다. 그 다음이 술이나 차 한잔?(이 또한 먹는 것이지요.) 이렇게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먹을 고민을 많이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먹을까? 누구와 먹을까? 더 싸게, 더 맛있게 먹을까 등등.
그런데 먹거리에 대한 고민만큼 그 먹거리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손에서 자라, 내게 오게 됐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관심이 있더라도 현대사회에서는 알기가 무척 어렵지요. 농업과 먹거리의 거리, 농민과 소비자의 관계가 너무나 멀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흙과 물과 씨앗이 농민의 손길로 자라나 생명보따리가 되어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것이 농업이고, 농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농촌인데 그 뿌리를 우리는 언제부턴가 잊어버리고 살게 됐습니다.
먹거리 국적이 사라지다
농업은 인간이 자연과 어우러져 일궈온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산업입니다. 아시다시피 인류의 조상은 열대우림이 우거진 숲에서 별 노력 없이 넘치는 나무열매를 따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더 이상 우거진 숲이 아닌 초원에서 살게 된 조상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 두발로 서고, 걷게 됐고요. 그러다 따먹고 버린 열매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나는 것을 보고 언제부턴가 의식적으로 씨앗을 갈무리하고 심고 가꾸게 되었고요.
축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잡아온 짐승이 새끼를 낳는 것을 보고 우리를 만들고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무리가 커지고, 공동체 생활을 위해 말과 글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그렇게 발전해 왔습니다.
한편 농업은 우리에게 먹거리만이 아니라 옷도 주고, 집도 주었습니다. 지금이야 화학섬유가 대부분이지만 옛날에는 삼베, 모시, 실크, 면화 등 옷의 소재가 모두 농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초가집도 벼농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요. 이렇게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인 식의주가 다 농업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 모든 과정은 오랜 세월동안 자급자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 물물교환, 화폐교환을 하게 되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밀접했고, 생산의 모든 단계를 농민이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농사는 ‘사람이 반, 하늘이 반’ 짓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교감하고 순응하면서 지어온 것이 농사입니다. 그래서 농업은 자연을 개조와 지배의 대상으로 보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토대를 두는 자본주의와는 태생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산업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도 “대저 농업이란 장사만큼 이익을 내지 못하고, 공장만큼 편리하지 못하며, 선비만큼 대접받지 못합니다. 국가는 마땅히 농업이 이문이 나도록 도와주고, 편하게 해주며, 농민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어야 합니다”라고 농업의 특성과 국가의 역할을 밝혀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이후 그 어떤 권력자도 이런 정신을 농정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양용 선생도 밝혔듯이 농업이란 이윤을 내기에 그리 매력적인 산업이 아닙니다. 자본의 회수기간이 길고, 가뭄, 태풍 등 자연의 영향에 따라 감수해야할 위험이 너무 크니까요.
국제교역에서도 농산물은 한참 후에야 부상했습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신자유주의화되면서 더 이상 이윤을 뽑아낼 곳을 찾지 못했던 농산물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지요. 그들에겐 농업이 새로운 이윤창출을 위한 거대한 불루오션이었던 셈이죠.
농산물이 국제무역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마지막 회의였던 우르과이라운드(UR)협상에서였습니다. UR 이전까지 농업은 농지개혁이나 보조금, 주요 식량작물에 대한 국가수매제 등의 보호주의가 보장되는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8년 동안의 UR협상 끝에 초국적농식품복합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WTO(세계자유무역협정)가 출범하면서 각국은 농산물 의무수입을 강요당하고 국가적인 농업보호정책도 하나둘 축소시키면서 각국의 농업기반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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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농업의 1차 목표는 자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생산과 확보가 아닌 교역의 대상이 됐습니다. ‘넓은 땅, 좋은 기후에서 생산한 싼 식량을 사다먹는 것이 낫다’는 논리가 사람들을 세뇌시키게 됐지요. 농업생산과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 국내 자본은 물론 초국적농식품기업이 단계마다 끼어들어 우리는 국적 없는 먹거리를 먹는 것은 물론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먹거리에 대한 통제권도 자본에게 빼앗긴 것이지요.
‘거대한 공동묘지’가 된 농촌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농업도 참으로 처량한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생명산업이자 사시사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선사해주고, 가뭄과 홍수도 예방해주는 농업이 ‘경쟁력 없는 산업 ’효율성 없는 산업‘이라고 내팽개쳐진지 오래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의 고향, 그나마 아직 공동체가 살아있고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농촌은 피폐해졌습니다. 농민은 아무리 지원해도 ‘밑 빠진 독’일뿐 도무지 자립하지 못하는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농촌은 한창 추수로 정신없이 바쁜 때입니다. 농민들은 쌀값이 연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추수철에 햅쌀이나마 제값을 받아야 1년을 사는데 정부는 추수철에 공공비축미를 방출해서 햅쌀 값마저 떨어뜨렸습니다. 9월에 5만톤을 방출하는 바람에 10월 들어 열흘사이에 조곡(도정전 낟알) 80kg 한가마가 1,650원이 떨어졌습니다. 사실 정부의 쌀값 떨어뜨리기는 올해만도 아니지만 특히 올해는 더욱 노골적이었지요.
작년에 벼 수확량이 감소해 쌀값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쌀값이 약간 만 올라도 (그래봤자 10년 수준, 밥 한공기에 150원밖에 안되는데.) 물가인상 주범으로 낙인찍어 2009년, 2010년 산 정부 비축미를 12차례나 방출했습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비료값, 기름값, 농기계값, 인건비 등 생산비도 계속 올라 연봉이 올라도 시원치 않은데 연봉이 떨어지니 얼마나 속이 터지겠습니까? 그것도 10년 전 수준으로 동결된 상태에서 또 떨어졌으니 말입니다. 제발 농사짓고 살겠다는데 이제 그만 떠나라고 이렇게 등을 떠밉니다.
지금 농촌은 살아있는 무덤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공동묘지’, 끔직한 말이지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작년 6.2 지방선거와 올해 보궐선거 때 전남 무안과 화순에 50여일정도 선거지원을 갔습니다. 가서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한창 농번기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들로 나가고 고요한 동네엔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한데 ‘누가 있을까?’ 저어하며 경로당 문을 열었습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훅~ 끼치는 고약한 썩는 냄새, 그다음 눈에 들어온 할아버지 몇 분. 얼굴에 파리가 서너마리나 앉았는데도 쫓지도 않고 누워계신 분, TV를 보시는데 보는 건지 마는 건지 멍한 분. 잠깐 인사하고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무덤이라더니. 이런 것인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대부분의 경로당 풍경이었습니다.
경로당 말고도 홀로 집에 계시는 어르신들 중에는 거동이 불편해서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찾아와준 것에 고마워하시고 손을 잡고 놓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사람이, 사람 목소리가 그리우셨나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홀로계시다 혼자 운명하시는 경우도 있다는 거지요.
경북 어느 초등학교는 학생 8명중 1명만 부모가 한국인이랍니다. 마을 부녀회 모임을 하면 베트남, 태국, 우즈베키스탄 등 다국적 모임이 된지 이미 오래죠. 더 이상 희망이 없어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기피하는 농촌에 우리보다 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딸들이 와서 우리 농촌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암울하고 참담한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놀랍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리 정부가 무시하고, 천대하고, 자본의 논리로 농민들을 퇴출시키려 해도 우리 농민들은 그래도 꿋꿋하게 농업을, 농촌을 지키고 있습니다. 버티고 있지요. 더 이상 버틸 힘마저 잃어버리기 전에 노동자들이, 소비자들이 손을 맞잡아줘야 하지 않을까요?
농업은 가장 오래된 산업이자 가장 오래될 산업
2007년, 2008년에 세계식량위기가 있었습니다. 16개국이 넘는 많은 나라들이 식량부족으로 폭동이 일어났지요. 올해 일어난 중동의 자스민 혁명도 그 바탕에는 식량문제가 있었고요. 최근 국제농업동향에 따르면 주요 쌀 수출국들의 생산량 감소로 국제 쌀값이 20%가량 오를 거라고 합니다. 더 이상 식량을 싸게 사먹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신자유주의 농업개방정책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농업생산기반이 파괴되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는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재해로 점점 더 많은 피해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에너지위기, 금융위기에 갈 곳 없는 투기자본이 농산물투기로 몰리면서 국제농산물가격을 부채질하고 있지요.
이런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농업과 식량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들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태국은 국가수매제를 부활했고 인도는 식량보장법이라는 법을 만들어 국가적인 차원에서 농업을 보호하기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들은 식량주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실천하고 있기도 합니다.
‘식량주권’은 국제농민운동 조직인 비아캄페시나(농민의 길)가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 처음 주장했습니다. 식량주권은 ‘먹거리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에 대한 입장이며 원칙입니다.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영양이 풍부하며 문화적으로 적합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권리이자 생산할 수 있는 권리, 자국의 농업, 먹거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농민과 국민, 국가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식량주권입니다.
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식량주권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궁극적으론 살아가며 불평등과 탄압이 없는 남녀, 민중, 인종, 계급, 세대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 이를 위해 민주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대단히 근본적이고 현 사회를 뛰어넘는 대안이지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도 비아캄페시나와 함께 활동하면서 우리의 식량주권 실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민들만의 노력으로는 쉽지 않다는 걸 독자분들 모두 느끼실 겁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때 가능하겠지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먹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어느 시대에도 없지요. 그래서 농업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했을 뿐 아니라 인류가 존속하는 한 가장 나중까지 함께 가야할 산업, 오래될 산업입니다. 농업이 얼마나 소중한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몸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