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계의 탐욕과 부패를 비난하는 월가 시위는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0월 15일엔 전세계 82개국 1천5백여 도시에서 '1%에 맞선 99%의 저항'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국제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있었다. 이번 시위가 향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몇 가지 양상을 다뤄보고자 한다.
서로에게 용기와 영감을 불어넣은 각국의 투쟁들
첫째, 세계 각지의 다양한 시위와 저항이 상호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다. 년초에 터진 아랍 민주화 시위가 유럽에서 벌어진 각종 긴축 반대 시위에 영감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과 그리스의 시위에서 그러한 양상이 두드러졌다. 급기야는 아랍 민주화 시위가 이스라엘로 옮아붙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국의 심장'인 미국에서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사진] 현재는 60년대 당시 미국 노동계급의 의식을 장악했던
'중산층화'라는 신화는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는 그동안 세계화가 불러온 뜻밖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구 곳곳에서 노동자와 농민, 중산층들의 삶을 파괴하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이런 현실에 대해 서로 분노의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차원의 공감대 형성은 자본주의 역사상 커다란 국제적인 격변시기에 그 모습을 드러내왔다. 유럽 차원에서는 1848년, 1차 대전 전후, 1930년대 대공황 시기, 1960년대 베트남 민족해방 투쟁으로 상징되는 반식민지 투쟁과 학생들의 투쟁 시기가 대표적이다.
제국의 심장을 겨누다
둘째, 이들 시위들은 과거와는 다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년초에 아랍 지역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을 때, 일부 '전문가'들은 이 시위가 아랍 지역의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한 것일 뿐이라며 그 의미를 제한했다. 아랍 민주화 시위는 그저 자본주의 주변부에서 벌어지곤 하던 전형적인 반독재 시위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이어 발생한 유럽 지역의 긴축반대 시위와 미국 위스콘신주 시위 등이 아랍 지역의 민주화 시위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이들 시위들이 커다란 공통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좀 더 분명해졌다.
그동안 전세계 민중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트린 신자유주의와 군사적 제국주의, 금융위기가 민중에 그 부담을 전가하는 데 대한 저항이 결합됐다는 게다. 현재는 이들 시위가 세계 자본주의의 본산으로 인식되는 국가들로 옮겨 붙고 있다. 이들 지역은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가장 가혹하게 추진한 지역이자 기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곳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일본, 이스라엘을 들 수 있다. 세 나라 모두 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중심이면서도 그간 사회적 저항이나 투쟁이 전무하거나 아주 취약했던 지역이다.
물론 각국에서 이러한 투쟁이 시작되거나 촉발되는 쟁점이나 과정은 각국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상이한 모습을 띄기도 한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엔 이러한 저항이 원전 폭발에 따른 반원전 시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터무니없는 집값, 물가 인상에 대한 저항으로 드러난 바 있다.
미국의 경우엔 더욱 극적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제국의 심장'이면서도 사회적 투쟁의 무풍지대였다. 수십년 동안 노동자들이 수많은 총파업을 일으켰던 유럽이나 기타 다른 국가들과 달리 미국 노동계급은 총파업이라는 개념 자체를 잊은 지 오래였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지배계급과 손잡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노동계급 의식이 가장 낮다고 평가받던 미국에서 마침내 투쟁이 벌어진 셈이다.
[사진] 신자유주의와 군사적 제국주의, 금융위기가
민중에 그 부담을 전가하는 데 대한 저항이 결합돼 나타나는 양상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미국에서 벌어진 투쟁에서 아랍이나 유럽보다도 더욱 더 분명하게 적이 바로 누구인지 선명하게 적시했다는 점이다. (바로 1%!) 어쩌면, 이번 월가 점령 시위는 겨울이 찾아오면서 일단 그 기세가 잦아들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번 시위가 미국 대중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남긴 정치적 영향까지 완전히 사라지게는 못할 것이다. 또한 이후 다양한 국면과 계기를 통해서 다시금 다양한 형태로 유사한 투쟁이 분출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번 월가 점령시위는 좀 더 연속적인 맥락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년초에 있었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타도 시위와 유럽에서의 긴축 반대 시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 자체만으로 보면, 위스콘신 주지사의 반노동자적 입법안에 대한 전국적인 반대 시위와 다양한 지역에서 벌어진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기름진 토양 기능을 하기도 했다. 경제적 문제를 둘러싼 전국적인 투쟁이 좀 더 의식적인 사람들의 정치의식과 투지, 분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정치적 쟁점을 가지고 과감하게 투쟁에 돌입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 쟁점을 둘러싸고 전국적 초점이 형성된 투쟁들은 그 결과 여부와 무관하게 이후에 국지적인 차원의 경제적 쟁점을 둘러싼 각종 투쟁에 정치적 영양분을 제공하곤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시위는 장기적으로 미국 노동계급의 의식상의 전환을 불러오는 시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류가 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투쟁의 사회적 구성(내용)과 이데올로기간의 불협화음
세 번째, 이번 투쟁들은 투쟁의 사회적 구성(내용)과 이데올로기와의 관계에서 특이한 역설을 보여준다. 이 점은 미국과 서구에서 사회적 투쟁이 가장 격렬했던 지난 1960년대와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사회적 투쟁이 벌어졌고,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학생운동과 노동자 총파업(특히 1968년)이 발생했다.
그런데 1960년대 당시 이들 지역의 사회적 투쟁들에 나타난 특징은 전통적인 의미의 마르크스주의나 계급투쟁 노선과는 사뭇 달랐다. 최소한 서구 국가들에서 이러한 사회적 투쟁에 돌입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당시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서구 국가들이 벌이고 있던 제국주의 전쟁과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사회풍조에 반대하여 저항했다.

[사진] 대중들이 좀 더 분명한 목표와 조직방법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진보진영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국제적 차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저항에 대규모로 동참한 것은 당시까지만 해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벌어진 일인데, 당시 젊은이들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나타난 참상과 지배계급의 전쟁 명분의 허구성과 위선에 분노했다. 또한 이들은 당시 자신들을 억압하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여겼다.
노동계급의 부재
미국의 경우, 다른 서구 국가들과 또 다른 점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교육받은 젊은이들(주로 대학생들)의 대열과 나란히 당시 미국 지배체제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던 흑인들의 일부와 라틴계, 다른 소수파들이 참가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당시 미국의 급진적인 사회적 저항은 교육을 아주 '많이' 받은 학생이거나 너무 '적게' 받은 사회의 최하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의 미국 우파들은 이러한 시위들을 벌이는 세력들을 '박사들과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연합'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당시 미국에서 벌어지던 사회적 투쟁에서 미국 민중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백인 노동계급의 부재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미국에서 중요한 노동자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70년대에 특히 활발했는데, 이는 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미증유의 엄청난 급진화의 분위기가-잠깐 동안이지만-산업과 노동조합 영역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급진화의 분위기는 미국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급진화 분위기가 군대에조차 파급되어 60년대 말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 가운데 장교들에 반대해 다양한 저항을 벌였던 사람들 대다수도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미국 노동자 계급 전체는 이전보다 상당히 향상된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었다. 경제적 하락이 그다지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도 분명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 향상을 중산층으로 가는 티켓으로 여겼다. 이들 백인 노동계급들은 자신들을 희생하여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 자신들의 신분 상승 욕구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억압받고 착취받는 대중의 핵심인 백인 노동계급들은 60년대의 사회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미국 지배체제를 뒤흔들 정도의 강력한 유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신분상승의 기대가 남아있었던 때였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노동자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평온을 유지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거의 파업 투쟁자들 역시 존경받는 중간계급 경력을 쌓거나, 자신들의 과거 급진적인 의식을 누그러뜨렸다. 결국 이 당시의 투쟁에서 사회적 구성(내용)은 보통 급진파 정치학(예컨대 마르크스주의)에서 핵심적인 주체로 상정되는 노동계급이 빠진 상태였던 것이다. 반면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는 이런 사회적 구성(내용)의 결핍과는 상반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대개 중간계급 출신의 학생 투쟁가들 가운데 가장 의식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을 모종의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겼다.
이러한 자기 정체성 형성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당시엔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서투르고 왜곡된 형태로나마 당시 좌파 진영의 주요한 담론으로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당시까지는 마르크스주의가 어쨌든 이전의 각종 투쟁들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사회주의의 본산이라고 일컬어지던 소련이나 중국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여전했다. 마지막으로, 당시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식민지 독립투쟁을 벌이던 제3세계 곳곳에서도 자신들의 투쟁을 모종의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했던 것도 이들 급진파들의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 서구 국가들의 급진파 젊은이들 역시 제3세계의 반식민지 투쟁에 깊은 공감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베트남이나 쿠바가 그렇다.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60년대 당시 새롭게 등장했던 '신좌파'가 1960년대 말에 분파간의 갈등으로 분열했을 때, 다양한 마르크스 경향들이 등장해 기존의 신좌파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라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는 당시 신좌파들도 공히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부재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현재는 60년대 당시 미국 노동계급의 의식을 장악했던 '중산층화'라는 신화는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과거 대학 교육이 안락한 중산층의 삶을 보장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던 때완 달리, 지금 대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 엄청난 빚더미와 점점 줄어드는 일자를 놓고 격심한 경쟁을 해야 할 위치에 처해있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계급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노동계급의 고용과 수입 역시 갈수록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누적적인 정치적, 경제적 효과가 노동계급내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지배계급 가운데 우파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도전을 통제하기 위해서 60년대에 급진화한 청년들과 노동계급간의 분열을 이용하곤 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당시 노동계급은 여전히 중산층으로의 신분상승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되게 중산층으로 이루어진 급진화한 젊은층들의 사회 체제에 대한 도전과 투쟁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측면이 있었다. 당시 공화당 정부(닉슨)의 부통령이었던 애그뉴는 이 점을 이용하여 건설 노동자들을 선동, 맨하탄에서 벌어지던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를 공격하도록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맨하튼의 건설 노동자들이 월가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맨하튼의 주코티 공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이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간 주로 미국 공화당이 노동계급 가운데 의식화하지 못한 부위를 선동하여 좌파들을 고립시킬 때 흔히 사용하던 '엘리트주의'가 더는 효용 가치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두 집단 모두가 이제는 하나의 특정 집단을 공통의 적으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지금 미국에서 등장하고 있는 저항의 사회적 구성(내용)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이미지와 많이 닮아있다.

[사진] 지금 미국에서 등장하고 있는 저항의 사회적 구성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이미지와 많이 닮아있다.
한편, 여기서 사회적 구성(내용)과는 상반되는 이데올로기상의 불협화음이 나타난다. 미국에서의 투쟁이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전형적인 사회적 구성(내용)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지난 60년대와는 달리 이번에는 마르크스주의적 담론이 영향력 있는 조류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시기 구 공산권의 몰락으로 그동안 몇 갑절 증폭된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약점 때문에 반월가 시위는 잠재력과 창조성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와 이행방법, 조직방법을 둘러싸고 불필요한 혼란과 좌충우돌을 겪고 있는 측면도 있다.
결국 반월가 시위가 보여준 놀라운 힘과 이 투쟁에 대한 국제적 각광과 반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의 투쟁은 이러한 사회적 구성(내용)과 이데올로기간의 불협화음 속에서 그 잠재력을 온전히 현실화하는 데는 제약 요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미국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아주 두드러지는 현상이기 하지만, 전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다. 대중적인 좌파정당이 존재하는 유럽이나 남미는 상대적으로 이런 혼란이 덜하기는 하지만, 이들 지역도 이런 문제에서 완전히 면역되어 있지 않다.
이 점에서 경험 없고 미숙한 청년들과 대중들이 좀 더 분명한 목표와 조직방법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진보진영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국제적 차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과거처럼 자신의 주장이나 정책을 이미 검증된 것인 마냥 들이대는 것은 역효과만을 불러올 것이다.
현 시기는 그런 점에서 이들과 관계를 맺을 때, 이들이 좌파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불신을 고려하여 조심스레 접근하면서도 매우 끈덕지고 지구력을 발휘하는 정치력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